아이의 자폐 호전을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브로콜리에서 유래한 성분이 자폐 호전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보았다.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인데, 어느 연구결과에서 자폐증을 가진 피실험자들이 상당한 호전을 보였다고 하여,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았다.
설포라판, 그 정체는?
설포라판(Sulforaphane)은 십자화과 채소인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등에 풍부하게 함유된 화합물이다.
특히 브로콜리 새싹에서 농도가 높은데, 설포라판 자체가 함유된 것이 아니라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라는 화합물의 하나인 글루코라파닌(glucoraphanin)이 효소인 미로시나아제(myrosinase)에 의해 분해될 때 생성된다.
즉 브로콜리같은 채소를 씹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인체내에서 설포라판은 주로 간에서 대사된다. 간에서 설포라판은 글루타치온과 결합하여 더 수용성이 높은 형태로 변환되고, 마지막에는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설포라판은 항산화 작용을 하여 인체의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염증 억제, DNA 손상 방지 등 아주 다양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특히, NRF2 경로를 활성화하여 항산화 효소의 발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RF2(Nuclear Factor Erythroid 2-Related Factor 2)는 우리 몸의 항산화 반응을 조절하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간단히 말해서, NRF2는 세포를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보디가드의 역할을 한다. 산화 스트레스는 세포나 조직에 손상을 주는 활성 산소 종(ROS)이 과도하게 생성될 때 발생된다.
NRF2로 촉진되는 항산화 효소는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세포 손상을 방지하고, 세포의 회복을 도와 항염,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고, 심지어 항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설포라판이 자폐를 치료한다?
소제목을 자극적으로 적긴했는데, 연구논문 “Sulforaphane treatment of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는 설포라판이 자폐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 준비
이 논문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젊은 남성들에게 브로콜리 새싹 추출물에서 유래한 화합물인 설포라판(sulforaphane)을 투여하고 그 효과를 평가한 연구다.
연구는 더블-블라인드, 위약 대조, 무작위 배정 시험으로 설계되었으며, 참가자들은 설포라판을 포함한 치료군(n=29)과 위약을 받은 대조군(n=15)으로 나뉘어 18주 동안 일일 구두 복용하였다. 치료 후 4주 동안은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다.
참가자 : 13세에서 27세 사이의 중등도에서 심각한 자폐증을 가진 젊은 남성 44명
임상 시험 설계: 참가자들은 설포라판을 투여받는 실험군(29명)과 외관상 구별할 수 없는 위약을 투여받는 대조군(15명)으로 무작위 배정
설포라판 및 위약 투여: 참가자의 체중에 따라 설포라판(50-150 μmol) 또는 위약을 매일 투여.
- 더블 블라인드 : 참가자와 연구자 모두가 참가자가 실험군인지 대조군인지 모르도록 함
- 위약 대조 : 대조군에게는 실제 치료제 대신 위약(Placebo, 가짜약)을 투여
- 무작위 배정 : 연구 참가자들을 실험군과 대조군에 임의로 배정
연구 결과
연구 결과는 설포라판을 투여받은 참가자들이 위약을 투여받은 참가자들에 비해 행동에서 상당한 개선을 보였다.
Aberrant Behavior Checklist (ABC), Social Responsiveness Scale (SRS), Clinical Global Impression Improvement Scale (CGI-I) 등의 평가 도구를 사용한 결과 설포라판 그룹은 위약 그룹에 비해 증상이 개선되었다.
- Aberrant Behavior Checklist (ABC) : 행동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 보호자가 완성하는 설문지, 총 58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개 하위 척도(불안정성/분노(Irritability/Agitation), 무기력성(Lethargy/Social Withdrawal), 독백적 행동(Stereotypic Behavior), 과잉행동(Hyperactivity/Noncompliance), 부적절한 언어(Inappropriate Speech)로 구성되어 있음. 점수가 높을수록 해당 행동 문제의 심각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
- Social Responsiveness Scale (SRS) : 사회적 상호작용, 의사소통, 반복적 행동 및 관심 분야의 제한성 등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 관련된 특성을 평가하는 자가 보고식 도구. 총점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어려움 정도를 나타내는데, 점수가 높을수록 자폐의 특성이 더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함
- Clinical Global Impression Improvement Scale (CGI-I) : 치료 전과 비교하여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평가하는 도구. 환자의 전반적인 임상 상태의 변화를 7단계로 요약하여 평가
설포라판 그룹은 ABC에서 34%, SRS에서 17%의 점수 하락(개선)을 보였으며, CGI-I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 비정상적 행동, 언어 커뮤니케이션에서의 개선이 나타났다.
다만, 설포라판 투여를 중단한 후, 참가자들의 행동 점수는 치료 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대목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설포라판의 효과가 그 순간에만 반짝이는, 즉 일시적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연구에서 설포라판이 선택된 이유는 산화 스트레스, 항산화 능력 저하, 글루타티온 합성 감소,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지질 과산화 및 신경염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효과 중 적어도 하나는 자폐 호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의료적 접근이 힘듦과 동시에 각종 치료(라고 할 수 있나 싶다..)에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설포라판이 눈에 띄는 개선 효과를 보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 않을까?
마치며
이전에 아스트로젠이나, 지놈앤컴퍼니의 자폐 치료제 개발에 대해 다룬적이 있다.(링크는 아래 클릭)
L. reuteri 루테리 프로바이오틱스가 자폐를 치료한다
이러한 치료제로써 개발이 진행중이지는 않지만, 이 논문을 비롯하여 여러 논문에서 설포라판의 효능이 입증되고 있다.
필자의 아이에게도 관련 제품을 직구하여 먹이고 있다.
여기서 팁!
설포라판은 열, 빛, pH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분해될 수 있으며, 유통 과정 및 제품 보관 중 쉽게 변질된거나 효과를 잃는다.
따라서 글루코라파닌이 함유된 제품을 찾되, 설포라판 대사작용을 할 수 있도록 미로시나아제가 반드시 포함된 제품을 고르는것이 좋겠다.
자, 이렇게 설포라판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
아이가 자폐라서 평소 관심도 없던 이 분야에 집중하게 되고, 또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나중에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정표 없는 항해, 자폐의 치료를 위해 오늘도 앞으로 전진하는 당신과 나를 위로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