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기안, 그 끝없는 고통에 대하여

편의상 반말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보고서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그렇다. 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 기안은 내가 하는 일중에 아주 작은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항상 보고서를 만들때, 추진 배경 또는 목적에서 첫글자를 적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다.

창작의 고통? 그런 고귀한 행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삐거덕대는 머리를 굴리며 오늘도 첫글자의 자음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보고서와 아~~주 상관없는 일을 했다.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라서 아웃풋만 제대로 나오면 최고로 쳐주는 일이었기에 그 일터에서 나는 에이스라고 불렸다.(흐흐 농담이 아니다!)

항상 문제를 제일 빨리 해결했고, 또 시간이 남아돌면 남의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그게 재밌긴 했는데, 돈이 안됐다. 그리고 몸이 너무 혹사당했다.

매일 8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했다. 이게 일상이었다. 토요일도 출근했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도망쳤다.(월급만 많았으면 도망 안갔다..)

그렇게 이직을 하고서도 보고서와는 아주 거리가 먼 일을 했다. 또다시 컴퓨터 관련 일이었는데, 그 때는 하드웨어(그래픽 카드나 CPU가 아니다)를 다루는 일을 했다.

컴퓨터를 설치하거나 선로를 깔거나 하는 일이라 자판을 두들기기 보다는 책상밑이나 천장위를 기어다니는 일을 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에게 몸을 쓰는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내 거주지와 너무 멀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또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아주 쌩뚱맞은 일이다. 사무직인데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도 자주하는 일이다. 안그래도 내성적인데 사람들을 만나고 호탕하게 웃고 회의도 주재하고, 아주 피곤했다.

그런데 더 피곤한것은 보고서를 기안하는 것이었다.

이놈의 보고서는 상사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 A라는 상사 밑에서 그의 스타일대로 보고서를 쓰는 방법을 배웠다. 이제 다 배웠으니 하산해도 좋다는 상사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다른 상사의 밑으로 갔다. 그리고 나의 숙련된 보고서 쓰기를 뽐냈다. 어떻게 됐을까?

그 상사 왈, 내 보고서는 저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고이 담겨있는 그 무엇가와 같다고 하였다. 도대체 보고서를 이런 스타일로 쓰는 사람이 어딨냐고 역정을 내더라. 아니, 그거 당신보다 짬밥 높은 상사가 가르쳐 준건데…! 물론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그저 죄송하다고, 어떻게 하면 보고서를 깔끔하게 다듬을 수 있냐고 적극적으로 물어보았다. 속으로는 휘파휘파~ 를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자 선심 쓰듯이 일단 앉아보라고 한다. 각을 세워서 앉아 귀를 쫑긋세워 경청하는 척 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각종 조언을 가장한 비난과 힐난!

시간이 흘러가며, 나는 점점 더 능숙해졌다. 보고서를 쓰는 일이 처음엔 단순한 문서 작성이었다면, 이제는 나만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각 단어와 문장이 마치 색깔을 가진 브러시처럼 내 손끝에서 춤을 추었다. 내가 만든 보고서는 더 이상 쓰레기통에 가까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상사는 내 보고서를 예시로 들며 다른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고서 작성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직을 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상사와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났고, 그 매번 다른 스타일을 익혀야만 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보고서 작성은 단지 문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소통과 이해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상사 아래에서든 자신감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물론, 때로는 여전히 첫 글자를 쓰기 위해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민조차도 나의 성장과 발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나는 내가 겪은 모든 고난과 도전을 통해, 한 조각의 종이 위에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보고서의 첫 글자를 쓰기 위해 펜을 들고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이 나의 일이라면, 나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완성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것이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나의 업무와 나의 이야기가 담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소오름…. !!!!

내가 오래산 것은 아니지만 나름 살아보니 보고서 쓰기에는 정답이 없더라. 정답이 있다면 그건 현재 내 상사의 보고서 작성 스타일이다.

내 경험으로 말하건데 간결하고 명확한 보고서의 표본이라는 것은 없다. 그건 당신의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깐.

상사가 유순하다면 잘 썼다면서 넘어갈 것이고, 성격이 공주님 같다면 토씨 하나하나 지적하며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매일 보고서 땜에 까인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들이 잘못된 거니깐.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이 나아지고 내일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능력이 모자라고, 덜떨어져서 그런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스타일에 못 맞추는 것일 뿐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당신과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그깟 보고서 한 장에 평가를 받을 사람이 아니니까.